지리산 종주 산행 (2013/10/17~10/18)
안지기 허락을 받은지 한참 후인 10월이 되어서야 드디어 1박 2일로 지리산 산행을 가게 되었다. 며칠 전부터 준비물을 잘 챙긴 후 수원역에서 밤 11시 20분 기차에 몸을 실었다.
기차 안에서 잠이 오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쉽게 잠이 들었다. 자리가 불편해서 여러 번 깨다 자다를 반복하다 곡성에서 완전히 잠이 깨버렸다.
3시 15분 경 구례구역에서 내린 후 역 앞에 대기하고 있는 한 택시에 손님 4명 중 한명이 되어 성삼재까지 올라갔다. 구례구역에서 성삼재까지 가는 버스가 있긴 하지만 구례버스터미널을 거쳐서 올라가기 때문에 택시보다 시간이 많이 소요된다. 몇 천원 차이가 나지 않기에 시간 절약을 위해 나는 택시를 선택했다.
꼬불꼬불한 성삼재가는 길을 초등학교 때 부모님과 동네 사람들과 버스를 타고 올라간 기억이 있다. 꼬불꼬불대는 길은 그 때나 지금이나 같은 느낌이다. 성삼재에 도착하자 마자 택시는 짐을 내려주고 떠나버리고 등산객들만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노고단으로 가는 길로 올라간다.
3시 55분 경 성삼재에서 출발하여 4시 40분 경에 노고단 대피소에 도착했다. 돌아가는 길이 아닌 지름길을 선택해서 갔지만 산행에 아직 적응되지 않아 45분 걸려 도착했다. 노고단 대피소에서 잠깐 휴식을 취하고 같이 온 몇몇 사람들 대부분이 대피소에서 아침식사를 하려는지 모두 들어가버리고 나만 홀로 덩그러니 헤드렌턴에 의지하여 어두운 길을 올라갔다. 짧은 길을 선택하여 20분 만에 노고단 감시소에 도착했다. 시간은 5시. 이제부터 본격적인 종주 시작이다.
혼자 칠흑같이 어두운 산길을 가고 있지만 무섭기도 하다. 곰이나 맷돼지가 나타날까봐서. 신경이 예민해지고 내 발걸음 소리에도 놀라기도 했다. 한 30분 정도를 혼자 걸어가고 있으니 뒤에서 따라오고 있는 등산객 소리가 들린다. 반갑기 그지없다. 빠른 속도로 내 쪽으로 다가오고 있는 이 등산객은 분명 고수임이 틀림없다 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막상 지나가는 사람은 젊은 여자분이다. 헐~ 대단하다.
6시 정도 되니 날이 점점 밝아온다. 벌써부터 힘에 겨워 천천히 걷다가 문득 삼도봉에서 일출이 보고 싶어진다. 그 마음에 발걸음에 힘이 차고 빠른 속도로 삼도봉을 향한다. 삼도봉에 도착하기 전에 벌써 동쪽으로 밝은 빛이 비춰온다.
거의 뛰다시피해서 도착한 삼도봉. 시각은 6시 40분. 때마침 일출이 막 시작되었다. 그 모습은 정말 장관이다.
일출에 주위 경치가 예술 작품 그 자체다.
3개의 도가 걸쳐있는 삼도봉.
갈길이 멀다. 걸어온 길이 약 6K, 걸어가야 할 길이 20Km. 갈 길이 멀기에 삼도봉에서 15분 가량 휴식을 취했다.
삼도봉에서 내리막길에 접어들고 산구름이 잔뜩 끼어 수묵화 속에 들어와 있는 듯한 기분이다.
내리막길이 끝나는 지점이 화개재이다. 아침 서리에 데크 길이 하얗게 되었다.
이제 오르막길이 시작되고 토끼봉으로 향한다. 어떻게 보면 본격적인 오르막길의 시작이다. 아직은 힘이 충분히 남아있어 노고단 출발 지리산 산행을 어렵게 느끼게 한다는 토끼봉을 많이 힘들이지 않고 오른다. 오르는 길에 주목나무 고목 군락이 보인다.
하지만 절대 쉬운 길이 아니다. 그냥 산 하나를 오른다고 생각하면 쉽다. 오르막길은 쉽게 끝나지 않고... 내 호흡을 바쁘게 하고 땀을 배출시킨다. 토끼재를 넘고 내리막길이 시작되고... 단풍나무 잎이 점점 붉게 물들고 가을이 깊어가고 있음을 알려준다.
오전 9시 경에 연하천 대피소에 도착했다. 삼도봉에서 여기까지 거의 2시간이 소요되었다.
햇볕 잘드는 곳에 위치한 아담한 연하천 대피소. 대피소 앞으로 약수물이 콸콸 솟고 있고 그 물맛 또한 시원하다. 여기서 고생한 내 다리에게 휴식을 주기 위해 10정도 휴식을 취했다.
이제 형제봉을 넘어 벽소령 대피소를 향해 떠날 차례이다. 형제봉을 오르는 길은 토끼봉보다 어렵지 않다. 형제봉 정상 주변에 있는 바위.
10시 반에 벽소령 대피소에 도착했다. 능선에 위치해 있고, 규모는 연하천보다 큰 편이다.
대피소 앞에 있는 테이블에 그 동안 내 어깨를 짓누르던 가방을 내려놓고 점심 먹을 준비를 한다. 점심은 컵라면에 김밥. 아침도 행동식으로 김밥을 먹은 터라 좀 질리긴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따스하게 내려쬐는 햇살 아래에서 시원한 바람이 솔솔 불어오고, 주변 경치는 진수성찬이다. 컵라면에 김밥이지만 그 맛은 일품이다. 점심 식사를 포함해서 30분 정도 휴식을 취하고 이제 세석을 향해 가방을 다시 맨다.
벽소령에서 세석까지 구간은 천왕봉가는 길 중 제일 긴 구간이다. 벌써 7시간 째 산행 중이고 내 몸에 비축되어 있던 힘이 점점 바닥나기 시작한다. 능선 오르막길에 올라서고 아득하게만 보이던 천왕봉이 이제 제법 가까이 보이고 하루밤 잠을 청해야 하는 장터목 대피소가 조그마한 점처럼 보인다. 하지막 아직 갈 길이 멀다. 눈으로는 저 능선길을 금방이라도 지나갈 것 같지만 현실은 그리 녹녹치 않다.
1시간 정도 걸어가니 선비샘이 보인다. 여기서 목을 축이고 잠시 휴식을 취한다. 여전히 세석은 보이지 않는다. 이 구간은 다른 구간이 비해 제법 돌산이 많고 경사가 있는 계단도 여러 개 있어 속도를 내기가 쉽지 않다.
이제 정말 지친다. 다리는 자동으로 움직이는 듯하고, 내가 걷고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 입에서 욕과 함께 단 내가 여러 번 나온 후에야 저 멀리 세석 평전이 보인다. 2시간 45분이 걸렸다.
작년 여름에 처음 보았던 세석 평전은 그 모습 그대로 아늑하고 평화롭다. 1,500미터 이상의 높이에 이런 평평한 땅이 있다는 게 신기하기만 한다. 세석 평전에서 맨주 한 캔을 마시면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다시 걷기 시작한다.
장터목까지는 3.4 Km 남았다. 그런데 바로 오르막길이다. 바로 앞에 보이는 촛대봉까지 예쁜 능선길이지만 이제 오르막길이라면 신물이 난다. 하지만 촛대봉 위에서 바라보는 경치는 그 고생을 보상하고 남는다.
내가 걸어온 길이 이제 아늑하게 느껴진다. 오른 쪽이 여자 젖가슴같다던 반야봉이고, 왼쪽에 뽀족 솟아있는 봉우리가 노고단이다.
방향을 돌려보면 연하봉과 제석봉 너머로 천왕봉이 구름 모자을 쓰고 장엄하게 우뚝 솟아있다.
촛대봉에서 장터목가는 길은 아기자기한 능선길이다. 지리산 종주 코스 중 제일 아름다운 길인 듯 싶다. 오르막길이지만 종착역에 거의 다가서니 이제 힘든지도 분간이 되지 않는다.
개고생 끝에 드디어 장터목 대피소가 보인다. 공사 중이라 너른 마당은 보이지 않고 지저분하기만 하다.
새벽 4시 경 출발해서 오후 3시 20분에 장터목에 도착했다. 예상보다 빨리 도착했고 무리하지 않고 꾸준히 일정 속도를 유지한 결과로 보인다. 지금 바로 백무동으로 하산하면 서울가는 버스를 탈 수도 있지만 내일 아침 일출을 보기 위해 여기서 1박을 할 예정이다. 5시 반 정도에나 방을 배정한다고 해서 여기서 그 때까지 쉬기로 한다.
저녁은 컵라면에 햇반이다. 김치와 소주가 곁드니 먹을 만하다. 소주 1병을 마셨는데도 취기가 약간 돌 뿐이다. 아래 식수를 구할 수 있는 곳에서 세수를 간단히 하고 8시 반 경에 쉽게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다음 날 새벽 4시 경 일어났다. 여러 번 뒤척거리긴 했지만 1월 설악산 중청대피소에서 잔 것보다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잘 잤다. 일출 시간이 6시 35분~40분이므로 천천히 준비하여 5시 10분 경에 천황봉을 향해 출발했다. 새까만 세상에 보이는 건 하늘의 별과 달과 발걸음에 촐삭대는 등산객들의 헤드랜턴 불빛. 헤드랜턴이 이렇게 고마울 때가 없다. 천천히 올라가서 한 시간 정도 걸려 천황봉에 도착했다. 아직 주위는 어둡기만 하고 땀이 식어 추워지기 시작한다. 아주 천천히 세상이 밝아지기 시작하더니 동쪽으로 붉은 빛줄기가 솟아오른다. 그러더니 곧 세상은 온통 붉은 기운으로 가득하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자연의 위대함에 탄성이 저절로 터져나온다. 이렇게 삼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 천왕봉 일출을 보게 되었다. 가을에는 그 기회가 다른 계절에 비해 많으리라.
일출을 감상하고 주위를 둘러보니 주위 운무가 아직 감동이 끝나지 않았음을 알린다.
아름다운 풍광을 뒤로하고 이제 대피소로 돌아갈 차례이다. 올라갈 때에는 볼 수 없었던 통천문과 주위 풍경에 내 눈은 또 다시 호사를 누린다.
35분 걸려 7시 35분에 장터목 대피소에 도착했다. 아침을 먹고 8시 10분에 하산을 시작했다. 백무동으로 내려가는 길은 세석에서 한신계곡으로 내려가는 길보다 훨씬 수월하다. 멋진 한신계곡을 볼 수는 없지만 여저 저기 예쁘게 색을 뽐내고 있는 가을 단풍을 보니 기분이 좋아진다.
하산 마지막 즈음에 백무동 야영장이 보인다.
10시 40분 경에 하산 완료하고 11시 40분 동서울 버스터미널 행 버스를 타고 상경했다. 10월 중순에 지리산 산행을 간 건 탁월한 선택이었다. 눈을 돌리는 곳마다 보이는 멋진 지리산 가을 경치와 감동의 천왕봉 일출과 운해. 정말 잊지 못한 장관이었다. 1박 2일 동안의 장쾌한 종주에 내 발은 힘들었지만 자연의 아름다움에 행복감을 마음껏 누렸던 산행이었다.
- 둘째 날: 5시10분 장터목 출발 / 6시10분 천왕봉 도착 / 7시 천왕봉 출발 / 7시35분 장터목 도착 / 8시10분 하산 시작 / 10시 반 백무동도착